[사과대 소식] [기고] 자본주의의 꽃, 주식회사 제도[매일경제]
주식회사 제도의 기록은 11세기 이탈리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코멘다'(위탁)라는 사업 형태가 있었다. 코멘다는 상업선 선장이 운영 자본이 없을 때 '수동적' 투자자가 선박 운영을 선장에게 위임하는 조건으로 자본을 제공하는 사업 형태다. 지금 세계 경제는 주식회사 없이 작동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식회사 제도를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주식회사 제도의 핵심은 '위임경영'과 '유한책임'이다. 주식회사 투자자는 사업을 경영자에게 위임하고 회사는 부채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지만 투자자는 자기 투자금만큼만 유한책임을 진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능력과 시간이 없는 투자자가 유능한 경영자에게 사업을 맡기게 되므로 모두가 이익이다. 이 점 때문에 주식회사는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회사가 성장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가 회사에 참여하게 되면 사업은 확장되나, 주주의 이익은 이질적이라 충돌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상법은 주주가 회사를 결성하고 회사를 통해 경영자를 통제하도록 규율한다. 즉, 경영자는 회사에 대해 직접 책임을 지고 주주에 대해 간접 책임을 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밸류업을 명분으로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접근이 목적에 부합하는지, 혹시 수백 년간 발전시켜온 주식회사 제도의 장점이 상실되지는 않을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사 충실의무 확대 주장은 자사주 배정 인적분할, 물적분할 상장 등을 통해 지배주주의 지배권 강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그러나 이 인식의 타당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은 이사의 책임 대상이 아니라 소수주주 보호다. 특수한 상황에서 소수주주의 이익이 보호받지 못해 투자 수익률이 과도하게 낮으면 자본시장 실패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소수주주의 이익은 보호돼야 한다.
소수주주 보호 정도는 법체계마다 다르다. 지배구조 권위자인 브라운대 라 포르타 교수는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의 용이성, 대표소송 제기의 용이성 등의 기준으로 영미법 국가의 보호 정도가 프랑스법계 국가보다 높고, 우리나라가 속한 독일계 대륙법 국가들은 중간 정도라고 보고한 적이 있다. 따라서 기존 법체계 내 구체적인 사안에서 소수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를 만드는 것은 기업가치 평가 제고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지, 법체계에도 맞지 않는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문구로 이사의 책임을 확장하고 개별 주주에게 소송을 통해 보호받으라고 하는 것은 밸류업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 논란이 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상법 개정안 중 이사 책임에 사회적 가치를 명문화하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미 ESG(환경·책임·투명경영)의 제도화로 많은 기업이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상법상 이사의 경영 의무에 사회적 요소를 포함하는 것은 사회적 가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표현을 완화해 법제화하더라도 자칫 기업의 사회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이사의 책임을 확대해 소수주주의 이익까지도 고려함으로써 주주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라는 명제와 모순된다. 효율성을 위해서는 경영자에게 명확한 책임 범위와 경영 판단의 재량을 부여해야 한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변호사(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