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우리대학 입학식 사회를 본 이정민 아나운서는 2005년 KBS 공채에 합격해 지금까지 방송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뉴스부터 시사교양, 라디오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약한 이 아나운서는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달려온 노력파다. 지난 3월 모교에 방문한 이정민 아나운서를 동대신문이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선배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이정민입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후배들에게 강연한 적이 있는데 오랜만에 후배님들을 만나 뵙게 돼 기뻐요.
Q. 선배로서 또 동문으로서 이번 2022학년도 입학식 진행을 맡아주셨는데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A. 제가 다녔던 학교에 오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에요. 캠퍼스 정문을 통과하는 거 자체가 20대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는 거 같아요. 저에겐 두 번째 입학식 진행이었어요. 십여 년 전 장충체육관에서 했을 때도 좋았지만, 이번에 또 불러주셔서 더 좋았죠. 특히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한 입학식을 진행한 건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3천 명의 신입생 중 무려 2천 명이 오프라인 입학식에 참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울컥했어요. ‘얼마나 후배들이 학교 생활이 간절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입학식은 의미 있는 순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됐죠. 옛날에는 지방에서 짐 싸서 서울까지 왔었잖아요. 후배님들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함께 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습니다.
Q. 아나운서라는 장래희망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노래를 부를 때부터요. 처음으로 TV에서 ‘안녕하십니까, KBS 뉴스입니다’를 봤을 때부터 그냥 나도 저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렸을 때 어른들이 아나운서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니까 외모도, 공부 실력도 아나운서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현실을 알게 됐죠. 그래서 꿈을접었어요. 그러다가 친구들이 제 성격이 유쾌하고 톡톡 튄다고 말해줘서 당시 유행했던 광고 카피라이터가되면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광고홍보학과에 진학했지만 마음 속엔 아나운서의 꿈이 계속 남아있었던 거 같아요. 결국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하면서 아나운서가 저에게 더 재밌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죠.
Q. 아나운서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공인입니다. 아나운서의 삶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A. 아나운서가 참 애매한 직업이에요. 한국과 일본에만 있고 다른 나라에는 없어요. 대신 다른 나라에는 앵커가 있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나운서 이정민’의 모습은 각기 다를 수 있어요. 제 이름과 회사, 했던 작품이 전부 매치돼서 아나운서 이정민이라고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아나운서는 본인의 캐릭터를 지우고 주어진 역할에 집중해서 그걸 표현해내는 게 임무라고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저는 이정민이라는 캐릭터를 감추고 아나운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못 알아보겠거니 아무렇게나 행동하면 되게 우스워지고요. 반대로 알아보겠지 싶어서 가리고 다녀도 우스워지는 거예요. 그런 점은 힘들게 느껴지더라고요.
▲2022학년도 우리대학 입학식 사회를 본 이정민 아나운서 (사진캡처=동국대학교 공식 유튜브.)
Q. 방송국 입사 시험은 과정과 난이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요?
A. 그냥 다른 사람이 열심히 했던 만큼 한 것 같아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나운서를 준비했는데, 부모님 몰래 준비했어요. 당시 DUBS(교육방송국) 아나운서 친구와 대운동장에서 발성 연습을 많이 했어요. 또 신문을 읽으면서 최신 시사 많이 챙겨봤고요. 토익도 높은 점수 받으려고 노력했어요. 시험의 합격을 좌우하는 건 글을 써내려가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분야에 상관없이 책을 많이 읽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던 것 같아요. 면접을 대비해 예상 질문과 답안을 적어서 저만의 노트를 만들기도 했어요.
Q. KBS 뉴스광장의 최장기 여성앵커이자 뉴스, 라디오, 교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A.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잖아요.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시간과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특별히 ‘어떤 프로그램이 애착이 간다’는 건 없어요. 그래도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을 꼽자면 ‘뉴스광장’이에요. 여섯 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3시에 일어나 4시까지 회사에 와야 해요. 메이크업과 헤어와 옷 모든 준비를 마치고 5시부턴 멘트를 쓰죠. 그 과정을 3년 반이나 했으니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어요. 폭설로 특보뉴스를 진행하던 날, 제가 박대기 기자를 불렀죠. 크게 이슈가 됐지만 사실 방송사고였어요. 현장 연결이 된 줄 모르고 연습하고 있던 박대기 기자의 모습이 그대로 나온 거예요. 제 인이어에서는 온갖 욕이 들렸지만 이미 화면이 저로 넘어왔기 때문에 최대한 버벅대지 않고 넘어갔던 비하인드가 있어요.
Q. 2005년 KBS 공채에 합격한 뒤 17년 동안 방송계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입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네요. 제 입으로 17년 방송 생활을 한 비결을 말하기엔 민망한데, 저는 한 프로그램 할 때마다 진심을 다해서 하려고 해요. 뭐든지 즐기면서 열심히 하는 성격이에요. 천성적으로 방송이 잘 맞는 거 같고, 지금 여러분과 얘기하는 것도 즐거워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항상 재밌어요. 만나는 사람들과 가족처럼 지내면서 현장 분위기를 띄우려고 합니다.
Q. ‘Dreams come true’라는 문구를 자주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좌우명인가요?
A. 네, 제 좌우명이죠. 에너지 넘치는 성격으로 열심히 살아요. 제가 30살에 앵커가 됐는데 그때가 가장 바빴어요. 뉴스광장, 생로병사의 비밀, VJ 특공대. 3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언론홍보대학원을 다녔어요. 뉴스광장 앵커를 하고 있었으니까 새벽 3시에 일어났어야 했고요. 매일 그렇게 일어나야 했으니까 저녁 아홉 시엔 잠자리에 들어야 했어요. 그러다 출산으로 휴학도 한 번 했죠. 최근엔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대비를 해야 기회가 닥쳤을 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최근 둘째를 출산하며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글쎄요. 원대한 목표는 없고요. 앞으로 남은 절반의 인생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변곡점의 위치에 서있는 것 같아요. 20대 대학생들은 저를 많은 소망을 이룬 사람으로 볼 수 있어요. 근데 삶은 참 긴 거예요. 아침마당을 진행하면서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을 자주 뵀었어요. 그분은 인생의 황금기가 60대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60대가 될 때까지 20년 정도 남았는데 그 나이대까지 치열하게 살고 싶어요. 둘째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용감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Q. 선배님께 동국대란?
A. 모교라는 말이 있잖아요. 모가 ‘어미 모’를 뜻하잖아요. 말 그대로 동국대는 제게 어머니 같은 존재죠. ‘우리 학교가 아니었다면 제가 아나운서가 됐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데 지원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후배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훌륭한 선배님들이 많아서 사회에 나오면 더욱 자부심을 느끼게 될 거예요.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할 조언이 있다면
A. 20대에만 할 수 있는 다양한 직·간접 경험이 중요해요. 책도 열심히 읽고 어학연수를 떠나서 외국어로 회화도 해보고. 연애도 해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세요. 봉사활동도 추천해요. 농촌봉사 가서 마이크 잡았던 일이 아나운서 시험에 좋은 도움이 됐었죠. 요즘 친구들이 온라인에만 빠져있는 거 같아 안타까워요. 오프라인으로 나와야 해요.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네요. 다채로운 경험은 문 밖에 있어요.
▲지난 3월 DUBS 스튜디오에서 이정민 아나운서와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DUBS.)
출처 : 동대신문(http://www.dgupress.com)